여행사진(記)/국외여행

자이언캐년 엔잴랜딩 / 미국서부여행(14)

질고지놀이마당 2010. 8. 19. 17:06

<일러두기>

계속 이어지는 여행기라서 이해가 잘 안되는 부분은 앞 뒤 글을 이어보기 바랍니다.

 

방문 첫날 오후에 아내와 딸과 동행하여 엔젤랜딩이란 곳을 올랐다.

무식하면 용감하다는 말처럼 뭘 모르니까 따라왔지, 엔젤랜딩 오르는 길의 상황을 알았다면 아내와 딸은 절대로 따라오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고생한 보람이 있어서 '백문이 불여일견'이라는 말처럼 자이언캐년의 비경은 직접 가서 보지 않고서는 100% 실감을 할 수가 없을 것 같다.

 

엔젤랜딩에 오르는 길은 처음에는 산책로 수준이다가 나중에는 가파른 바위산으로 변하고 나중에는 얼음과 눈으로 덮인 좁다란 바위능선을 거쳐야 한다.

특히 마지막 안부에서 작은 암봉을 넘은 다음에 칼날능선이 난코스였다.

한사코 만류하는 아내를 안심시킨 다음에 미끄러운 바위산을 올랐으나 거기가 끝이 아니라 아무도 간 흔적이 없는 난코스가 또 남아 있었다.

사전 정보 부족으로 운동화를 신은채로 올라왔는데 난간도 없이 너무나 위험한 구간이어서 엄두가 나질 않는다. 

 

엔젤랜딩 정상(아래 사진 왼쪽의 바위봉우리)에 오르려면 칼바위능선을 통과해야 하는데 양쪽은 깎아 지른듯이 까마득한 낭떠러지여서 아차하면 지구를 떠나야 한다.

지금 사진을 찍은 곳까지도 위험을 무릅쓰고 올랐는데 목숨을 걸고 도전할 이유는 없어서 발길을 돌렸다.

 

저 아래 시나웨바로 이어지는 계곡이 아득하게 내려다 보인다.

 

사전 정보 부족으로 아무런 준비없이 이런 차림으로 이곳까지 오른 것만도 의지의 한국인이다.(필자와 딸은 그냥 운동화를 신었다.)

군말없이 따라 올라와 준 아내와 딸이 대견스럽기 그지없다.

사진으로는 대수롭지않게 보이겠지만 아내의 뒷편에 눈이 끝나는 지점 아래로는 수백미터 절벽이다.

즉, 우리는 몇백미터 절벽 위의 지붕에 해당되는 곳에 서 있는 것인데도 삼각대에 의존하여 사진을 찍다보니까 평지에 선 것처럼 보인다.

 

<여기서부터는 다음 날(2월 6일) 새벽에 출발하여 나홀로 다시 오른 엔젤랜딩 풍경이다.>

어제는 가족이 함께 올라서 엔젤랜딩 가까운 안부에서 사진을 찍고 하산했다.

그 아쉬움에 다음 날 새벽같이 출발해서 다시한번 엔젤랜딩으로 올랐다.

밤새 비가 내리더니 새벽즈음 빗줄기가 잦아들었다.

가랑비 정도 내린다고 포기할 집념이 아니지 않는가?

하지만 위험구간인 엔젤랜딩에 오르기 보다는 계속 이어지는 등산로를 따라서 더 높이 더 멀리로 길을 잡았다.

 

아래사진에 오른쪽으로 이어진 협곡이 자이언캐년을 나가는 방향이다.

숙소인 자이언롯지와 방문자센터가 저 방향으로 있다.

 

위치이동을 해서 내려다 본 엔젤랜딩으로 이어지는 칼날능선

아래사진 중앙부분 오른쪽에 직벽위에 좁게 이어지는 바위능선을 거쳐야 하는데 눈과 얼음으로 덮여 있었다. 

 

 

절벽아래 내려다 보이는 협곡을 따라 시나웨바까지의 탐방도로도 이어진다.

협곡 양쪽은 수백미터의 절벽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절벽상단부는 부드러운 곡선을 이루는 산모양이다.

알기쉽게 비유하면 이곳 산 모양은 성처럼 높다랗게 직벽을 이루다가 상단부는 초가지붕처럼 몽실몽실하다.

 

 

바로 이런모습..

 

 

 

  

이제 눈이 몰아친 곳은 허리까지 빠지는 곳도 있다.

갈길이 멀지만 삼각대를 세우고 셀프로 인증샷을 하나 남겼다.

끝없이 펼쳐지는 새로운 풍경에 시간가는 줄 모르고 욕심을 내다가 약속한 시간을 넘겨서 이쯤에서 하산을 서두른다.

 

 

   

절벽모습을 담는 사진 한장 한장 위험을 감수하고 무척 힘들게 찍은 것들이다.

간간이 비가 내리는 가운데 허벅지까지 빠지는 눈을 무릅쓰고 벼랑끝으로 나아가야 절벽아래가 보이기 때문이다.

 

 

바위절벽에 홈을 파다시피 길을 낸 구간을 내려오면서 어스름에 오르며 지나쳤던 바위결 무늬를 다시 본다.

 

 

 

 

엔젤랜딩 트레일 중간지점까지 내려와서 본 계곡 모습이다.

밑에서 올려다 보면 엔젤랜딩 등산로는 이곳까지 그러니까 절반 정도만 보인다.

 

아래 풍경에서 물길이 끝나는 지점 다소 넓어 보이는 숲이 피크닉에리어고, 거기서 한굽이 더 내려가면 숙박시설인 자이언롯지다.

 

나홀로 엔젤랜딩에 다녀오는 과정에서 심각했던 문제 하나를 소개하고 마쳐야 하겠다.

지나고나서 돌아다 보면 별 일도 아니지만 그 당시에 아내와 딸의 입장에서는 하늘이 무너질 정도로 심각한 문제였다.

 

전날 1차로 엔젤랜딩까지 오가는 등산로 상황을 함께 걸었던 아내와 딸이 걱정스러 하기에 2시간이면 다녀온다고 장담을 하면서 안심을 시켰다.

실제로 내 걸음 속도면 충분히 다녀 올 수 있는 거리였다.

하지만 문제는 오가는 시간이 아니라 현장에 도착해서 정신을 뺏길만큼 수시로 바뀌는, 눈쌓인 자이언캐년의 풍광이었다.

 

한굽이 돌면 새로운 풍경이 나타나고, 조금만 더 가면 협곡아래 시야가 터질것 같은 기대감이 자꾸만 발길을 인도한다.

그러다 보니까 산 위에서 이미 아내에게 약속한 2시간이 지나고 있었다.

더는 어쩔 수 없어서 뛰다시피 하산을 서둘렀지만 출발한 지 3시간이 지나서야 숙소에 도착했다. 

 

그런데 체크아웃을 했는지 문은 잠겨있고 짐은 밖에서 운반가능하도록 1층 베란다에 있는데 사람이 보이지 않았다.

잠시 어디 다니러 갔으려니 생각하고 베란다 창틀을 넘어 들어가서 혼자 짐을 옮겨 싣는데 아내가 나타났다.

그리고는 다짜고짜 울음부터 터트리는데 그 울음이 얼마나 심각한 감정상태인지 필시 그만한 곡절이 생겼다는 것을 직감했다.

영문을 모르는 나는 더 당황스러울 수밖에!

 

순간적으로 연로하셔서 요양병원에 계신 장인어른께서 돌아가셨다는 연락을 받았나보다고 짐작할 정도였다.

아내가 한동안 말도 못할 정도로 격한 감정을 추스리고 있는데 딸이 역시 심각한, 그러나 화가 잔뜩 난 얼굴로 돌아왔다.

딸의 표정을 보면서 문제의 원인이 나한테 있구나 직감했다.

약속한 2시간에서 30분이 더 지나면서부터 두 여자는 걱정이 시작됐단다.

그 험한 바위절벽에, 더구나 눈이 쌓이고 얼음까지 덮여있어서 까딱하면 추락인데 필시 무슨 일을 당했구나!

 

불길한 상상이란 하면 할수록 실제처럼 불안감을 키우는 법.

아내도 딸도 그런 방향으로 생각이 미치자 사고가 난 것이 틀림없다고 생각하고 오피스에 가서 구조요청을 하러 갔었단다.

그런데 아내와 딸이 더 황당하고 속상했던 것은 그쪽 사람들(롯지 오피스를 통하여 연락을 취한 공원측 레인져) 태도였다고 한다.

사람 목숨이 달렸다고 생각하고 SOS를 요청하는데 그들은 좀 더 기다려 보라고 태평스럽더라는 것.

 

그들의 입장에서 보면 엔젤랜딩은 왕복 4시간 코스인데 3시간밖에 안 지나서 난리법석을 피우는 아내와 딸이 이해가 안됐을 것이다.

그렇다.

공원을 소개하는 지도에 보면 엔젤랜딩까지 왕복 3마일, 길이 험하고 오르막이므로 4시간 걸린다고 되어있다.

그걸 2시간만에 다녀온다는 욕심은 빨리빨리에 익숙하고 길들여진 한국인다운 발상이었던 것이다.

결과론적으로 그들의 느긋한 태도 때문에 구조대가 출동하는 사태로 커지지 않아서 국제망신 당하지 않은 것은 천만다행이었다.

하나의 해프닝으로 끝났지만 이 일로 아내와 딸에게 단단히 약점이 잡혀서 이후 여행 스케줄에서 결정권이 축소되고 말았다.

 

이처럼 자이언캐년의 엔젤랜딩은  시간에 쫓겨서 주마간산격으로 지나칠 경우가 아니라면 꼭 다녀올만한 곳이다.

그런데 대개의 그랜드서클 여행기를 보면 자이언캐년이나 캐피털리프는 대충 지나쳐 버린다.  

특히 일정이 빠듯하고 정해진 코스만 도는 패키지여행의 경우는 지나는 길에서 보는 풍경사진 몇 장을 가지고 그 곳을 돌아 본 것처럼 소개한다. 

사실 미국의 국립공원은 아무리 규모가 작더라도 1박 2일을 할애해도 일부만 볼 수 있을 정도로 스케일이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