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 정치/질고지칼럼

절전 강요 앞서 내복입기부터 실천을

질고지놀이마당 2011. 1. 28. 11:32
 

올 겨울은 이상 한파가 유난히 맹위를 떨치고 있다.

울산에서 32년째 살고 있는 필자가 겪은 겨울 중에서 가장 추운 겨울을 보내고 있으며, 부산은 96년 만에 가장 추운 기록이라 한다. 이쯤 되면 '겨울은 추워야 제 맛'이라는 말은 사치다. 등 따뜻하고 배부른 사람들이야 그럴는지 몰라도 춥고 배고픈 처지의 사람들에게 혹한은 서러움이고 시련이다. 이를 대변하듯이 부산 해운대와 서울 지하철 역사에서 노숙자가 동사하는 사건까지 발생했다. 우리 사회의 무관심과 비정함의 한 단면, 그리고 우리나라 복지현실을 보여주는 것 같아 마음이 무겁다.

 

이상 한파는 갈 곳 없는 노숙자를 죽음으로 내모는가 하면 전력수요를 폭발적으로 급증시킴으로써 전력수급에도 심각한 상황을 만들었다. 여름철 무더위로 순간전력 소비가 예비전력을 위협하는 경우는 종종 보아왔던 일이나 상대적으로 전력소비가 적은 겨울철에 전력 수요 문제를 걱정하게 된 것은 아주 이례적인 일이다. 급기야 정부는 난방용 전력소비의 절제를 당부하고, 정부기관과 백화점 및 대형 매장 등에 난방온도를 20도 이하로 낮추도록 강제력을 발동하고 있다.

한켠에서는 얼어 죽는 노숙자가 있는데 난방온도를 낮추라고 하는 규제는 굶어죽는 사람을 옆에 두고 과식하지 말라고 나무라는 것과 같아서 참담한 심정이다. 물론 상황이 다급하니까 이런 대책과 국민들의 협조가 필요한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보다 근본적인 문제를 그대로 둔 채로, 국민들에게 절전을 호소하고 실내 난방온도를 단속하는 것은 미봉책일 뿐이다.

 

소비자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그 이치는 간단하다. 전기는 손쉽게 사용할 수 있고, 그동안 값싸게 써 왔다. 정부의 전력정책은 전기를 많이 생산해서 산업현장과 농업 등 특정 분야에는 원가보다도 싸게 공급을 했고, 가정용의 경우도 전기가 남아도는 심야전력은 지원과 혜택을 주면서까지 전력소비를 권장했다. 그 결과로 국민들에게 전기는 다른 에너지에 비해서 편리하고 값싼 에너지로 인식되게 되었다.

난방의 경우만 하더라도 전기가 연결된 곳이라면 전기스토브 플러그만 꼽으면 된다. 나무난로나 연탄난로는 별개로 하고 가스나 석유난로와 비교하더라도 간단하고 편리하다. 사용하기 쉽고 값싼 에너지가 있는데 누가 불편하고 비싼 에너지를 쓰려고 하겠는가?

 

겨울철에 전력소비가 급증하여 산업공단의 전기공급까지 문제가 발생하게 된 근본적인 원인이 이러한 전력정책에서 비롯됐다는 말이다. 그럼 정부는 왜 국민들에게 전기소비를 권장하는 정책을 취해왔던 것일까? 그 이유는 우리나라 전력 생산방식에 원자력 발전 의존도가 너무 높기 때문이다. 밤낮없이 가동해야 하는 원자력 발전의 특성상 밤에는 전기가 남아도는 현상이 발생한다. 남아도는 전기를 팔아먹기 위한 정책이 바로 심야전력 소비를 권장하는 것이었다. 이런 과정을 통해서 우리나라의 전력정책은 공급자인 정부와 전력회사는 물론 소비자인 산업현장과 일반 국민들조차도 대량생산 대량소비 구조에 익숙해졌다.

 

근본적인 문제는 여기서부터 출발한다. 길을 잘못 들여 놓고서 어느 날 갑자기 바로잡으려니까 어려운 것이다. 자원빈국, 화석에너지 고갈 등 원자력 발전의 불가피성을 어느 정도 인정한다 하더라도 원자력 발전에 대한 의존도가 지나치게 높은 결과다. 특히나 과잉생산을 해서 소비를 권장하는 전력정책을 펼쳐 온 것은 심각한 문제다. 다시 말해 정부가 전력을 값싸게 공급함으로써 산업경쟁력을 갖게 하는 것은 긍정적인 면이라 하겠으나 에너지 과소비를 조장하는 부작용이 따른다. 값싼 전력 공급과 소비를 권장해 온 정책의 결과로 기업과 가정의 전력소비가 가파르게 상승했다. 그리고 전력소비가 자꾸 늘어나서 예비전력을 위협하니까 원자력발전소를 더 건설해야 한다는 논리를 확대재생산 한다. 마치 달리지 않으면 넘어지는 자전거처럼...

 

사후약방문 격으로 절전 호소와 실내온도 규제를 하는 것은 일시적인 땜질일 뿐 근본 대책이 될 수가 없다. 원자력발전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전력정책을 근본부터 재검토해야 한다. 기저부하에 해당되는 전력수요는 원자력 발전으로 감당하되 계절적으로나 밤낮으로 수요 변동이 심한 전력 공급은 가동률 조정이 용이한 발전방식을 채택하면서 풍력 태양광 소수력 등 재생가능에너지로 바꾸어 가야 한다. 또한 공급을 늘리는 것 못지않게 수요를 억제하고, 전기를 절약할 수 있는 분야에도 투자를 늘려야 한다. 전기세를 대폭 올릴 수는 없겠지만 많이 쓸수록 값이 올라가는 누진제는 더 강화할 수 있을 것이다.

 

다소 생뚱맞은 질문으로 글을 마치고자 한다. 시민 환경단체들은 매년 겨울 내복입기 캠페인을 한다. 가정이나 직장에서 내복입기를 생활화 하면 실내온도를 20도로 낮추라고 안 해도 낮추게 될 것이다. 얼마 전 언론보도에 보니까 주요 정부청사의 실내온도는 23~24도를 유지하고 있었다. 필자의 경험에 비추어 볼 때 내복을 입기를 실천한다면 윗옷을 벗거나 더워서 창을 열어야 할 정도의 온도다. 정책입안자들과 국민들 위에 군림하면서 지시하고 규제하는 자리에 있는 관료들이 내복입기를 솔선수범 하고 있는지 의문이다.

그래서 묻는다. 당신은 지금 내복을 입고 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