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 정치/질고지칼럼

잊혀졌던 기억, 돈보다 사람이 먼저

질고지놀이마당 2014. 6. 14. 01:01

 

2014. 6. 11. 수.

 

사우 부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문화강좌 지원을 가는 동료들을 태워주고 사무실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복도 저편에서 누군가 나를 부르는듯한 기척에 뒤를 돌아보니 역광이라 얼굴은 알아 볼 수 없지만 분명 나를 부르며 뛰어오는 사람이 있었다.

누군데 나를 숨가쁘게 부르며 바쁘게 달려오는거지?

 

그가 지척으로 다가와서 큰절이라도 하는듯한 과한 동작으로 꾸벅 인사를 할 때서야 비로소 일련의 사연들이 필름처럼 떠오른다.

불과 1년 정도밖에 흐르지 않은 일인데 나는 '그 일'을 거의 잊고 있었다.

그는 큰 죄를 지은 사람처럼 연신 머리를 조아리며, 이렇게라도 용서를 구하는 것이 작은 위로라도 되었으면 해서 찾아왔다고 했다.

그의 갑작스런 출현이 처음에는 당황스러웠고, 그 다음에는 뜨악했으며, 이야기를 들으면서는 잔잔한 감동으로 바뀌었다.

 

자초지종은 이렇다.

약 1년여 전, 그러니까 작년 이맘때 쯤일 것이다.

내가 일하는 곳으로 사우 한명이 조언을 구하겠다며 찾아 왔는데 정서적으로 무척 불안해 보였고, 아주 절박한 눈빛이었다.

이런 경우 나는 상대가 누구이든 어떤 사연이든 거절 못하고 이야기를 들어주며, 도움이 될만한 내 경험이나 짧은 지식을 다 동원한다.

그리고 내 능력이 미치지 못하는 전문적인 영역일 경우는 아는 법조인이나 그 분야 전문가에게 조언을 구해서라도 도움을 주려고 노력한다.

 

그런 목적의 방문이겠거니 생각하고 애로사항을 청취하다보니 이 사람의 경우는 달랐다.

경제적 어려움을 당해 가족들은 뿔뿔히 흩어져서 풍비박산인 상태에서 각자 허리띠를 졸라매어 겨우 회생절차를 밟고 있다고 했다.

그런데 막바지 고비에서 단돈 50만원이 부족하여 다시 신용불량자가 될 처지라며 나보고 도와달라는 것이었다.

아무리 그렇기로 남들이 고액연봉을 받는다고 말하는 현대차 직원이 단돈 50만원을 못구해서 친분도 없는 나한테 찾아왔을까 이해가 안되는 상황이었다.

그는 함께 일하는 부서 동료들이나 주위 지인들에게도 다 도움을 받은 터라 막다른 골목이란다.

급여의 절반은 가압류 당해왔고, 주위에서 더는 융통하기 어려울 정도가 되었으니 살려주는 셈 치고 도와달란다.

 

내가 돈이 넉넉한 상황도 아니고 실제로 그 당시의 내 통장도 마이너스 상태여서 난감했다.

그렇지만 막다른 골목에서 나를 찾아오면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갖고 불문곡직 찾아와서 호소하는데 마음이 약해졌다.

까짓 50만원으로 그가 회생을 하는데 도움이 된다면 그 돈을 못받더라도 없는 셈 치고 보는 자리에서 50만원을 이체해 줬다.

그는 연신 고맙다면서 두 달안에 꼭 갚겠다고 약속을 했고, 그 이후 1주일~10일 단위로 전화를 걸어와서 고맙다며 약속을 꼭 지키겠다고 다짐했다.

 

그렇게 약속한 두달여가 흐른 뒤에 그가 찾아왔기에 아~ 정말 약속을 지키는 사람이구나, 내심 흐믓했다.

그가 돈을 갚으면 어렵게 흩어져서 살았던 가족들이 모였으니 함께 식사라도 하라고 얼마간 성의를 표해야지 생각했다.

빌려 준 돈을 되받는 것이지만 못받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던 돈이어서 공돈이 생긴듯한 나의 기분좋은 상상은 금방 깨어지고 말았다.

그는 쭈볏쭈볏 하다가 어렵게 말문을 열더니 다시 문제가 좀 생겨서 돈을 못 갚게 되었단다...ㅠㅠ

 

잠시 즐거웠던 상상이 깨지는 바람에 마음이 불편하고 어이가 없었지만 그가 하도 절박하게 이야기를 하는 통에 화를 낼 수가 없었다.

불편한 속내와 달리 "돈이 거짓말 하는 거지 사람이 거짓말 하는 것 아니지 않느냐, 찾아와 준 것만으로도 진심을 믿는다" 라고 비단결같은 위로의 말을 건넸다.

그 말에 용기를 얻은 것일까? 그는 넉살좋게(?) 한번만 더 도와달라고 간청을 하기 시작했다.

어처구니가 없고, 화를 내야할지 말지 내 감정을 어떻게 다스리나 갈등하는 동안에도 그는 자신이 처한 절박함과 이 고비만 넘기면 온 가족이 단란하게 살 수가 있다며 희망의 끈을 놓지않고 나에게 매달렸다.

 

결국 내가 지고 말았다.

그가 당장 필요하다는 30만원(*주 : 첫 원고에서 80만원으로 착각, 정정했음)을 다시 그의 통장으로 이체를 해줬다.

공적인 일을 오래 해오면서 남에게 모진 말 못하고, 거절하지 못하고, 과잉친절을 곧잘 베푸는 나의 '단점'이 또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그런데 추석 보너스를 받으면 갚겠다고 했다가 연말성과급을 받으면 갚겠다로 상환기일이 늦춰졌다.

수시로 전화를 걸어와서 고마움을 표하며 약속을 꼭 지키겠다는 다짐도 차츰 뜸해지기 시작했다.

 

최근 몇년간 연말 성과급을 적지않게 받아 왔기에 성과급을 받게되면 갚으려니 생각하고는 바쁜 일상에 묻히고 말았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연말이 되고, 성과급도 받았지만 일체 아무런 연락이 없었다.

그러나 나는 그에게 연락을 취해 보거나 그가 아직 회사를 다니고 있는지조차 알아보려는 노력도 하지 않았다.

내 지론은 남에게 돈을 빌려줄 경우에는 못받을 수 있다는 각오를, 보증을 서 준다면 그 빚을 떠안게 될 수도 있다는 각오를 해야 된다고 생각하고 살아왔다.

다시말해 빌려주는 순간 내 돈이 아니다라는 마음을 먹지 않으면 돈도 잃고 사람도 잃고 상처만 남는다.

 

그렇게 연말이 지나고 해가 바뀌어서 나는 그 일을 까맣게 잊고 있었다.

그런데 그가 불쑥 내 앞에 나타나서 용서를 구하며, '비록 지금 돈을 갖고 오지는 못했지만 형편되는대로 갚겠노라'고 약속을 하는 것이다.

지방선거 관련 뉴스를 보면서 내가 얼마나 상심이 크고 경제적 어려움을 겪을까를 생각하니 도저히 그냥 있을 수가 없더라고 했다.

빌렸던 돈을 당장 갚을 수는 없지만 자신을 믿어준 마음을 다치게 하고 싶지 않아서 달려왔다고 실토했다.

 

눈물이 그렁그렁한 그의 말을 듣고 있자니 닫혀있던 내 마음의 빗장이 열리고 봄눈이 녹아 내리듯 눈물이 주르륵 흘렀다.

솔직히 그 일을 까맣게 잊고 있었기에 아무런 감정이 없었는데 그가 나타난 순간, '왜 찾아왔지?' 나는 이제 당신의 어려움을 들어 줄 여유가 없어' 라고 잠시나마 뜨악하게 생각했던 내 자신이 부끄러워졌다.

그래, 돈보다 사람이 먼저다 라는 말은 쉽게 하지만 실천을 하지 않으면 공허한 헛 구호에 불과하다.

 

주위 사람들이 상상하지 못할 정도로 내 자신이 경제적 어려움에 직면해 있지만 돈보다 사람이 먼저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의 내 처지는 그가 나를 불쑥 찾아와서 절박하게 도움을 청할 때 만큼이나 인생역전이 되었는데 그가 반면교사로 나타난 것이다.

돈이 사람을 속이게 하고 추하게 만들지라도 사람으로서 지켜야 할 양심과 바른 삶이 왜 필요한지를 그가 내게 일깨워주고 있었다.

그의 말을 들으면서 내게 받아야 할 돈보다 더 큰 위로를 받았다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