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 정치/질고지칼럼

머피의 법칙-본의 아니게 외박을 한 사연

질고지놀이마당 2015. 6. 14. 23:56

2015. 6. 11. 목

 

본의 아니게 외박을 하게 되었다.

매 상황마다 최악의 조건으로 연결되는 바람에 집에 들어갈 수가 없어서 차 안에서 새우잠을 자게 된 사연이다.

 

목요일 퇴근 후에 식사모임이 있었다.

팀장이 새로 바뀌고 나서 내가 일하는 사무실 직원들과의 인사를 겸한 자리였다.

분위기 좋게 식사자리를 마친 뒤에 서울에서 내려온 친구가 있어서 21시경 친구의 친구집에서 만나 차 한잔 마시며 1시간 남짓 담소를 나눴다.

ktx 막차를 타야 한다고 해서 내차로 울산역까지 태워다 주며 짧은 만남의 아쉬움을 달랬다.

 

집으로 돌아온 시각이 11시 반경, 이때부터 운명의 장난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5층 계단을 올라와서 현관문을 열려고 보니까 열쇠가 없었다.

건망증이 좀 심해지는 것인지 가끔 열쇠를 차안에 두고 올라왔다가 다시 내려가서 열쇠를 꺼내오는 일을 가끔씩 겪는다.

반대로 출근이나 외출을 하면서도 차에 내려갔다가 폰이나, 중요한 물건울 두고 온 것을 깨닫고는 다시 집까지 올라갔다가 내려오는 일이 종종 있다.

단순한 건망증일까, 나이가 들어간다는 증표(치매 초기증상?)일까 씁쓸한 실소를 지으며 도로 내려가서 차안에서 열쇠를 찾았으나 없었다.

 

어디서 빠뜨렸지?

곰곰 생각해 보니까 빠뜨린 것이 아니라 사무실에 두고 퇴근한 것 같았다.

저녁모임을 앞두고 다른 직원보다 먼저 나와서 공장 안에 사무실에 들러 보고서 결재 및 업무협의를 하느라 사무실 문을 내가 잠그지 않은 탓이었다.

어랏~! 만약 그렇다면...? 순간 머리속이 하얗게 변하는 것 같았다.

'머피의 법칙'이 시작되는 순간이었던 것이다.

열쇠를 사무실에 두고 퇴근했다면 사무실 문은 굳게 잠기어 있을테니까 집에 들어갈 길이 막혀버린 것이다.

 

해결 가능한 방법은 사무실 열쇠를 나누어 가지고 있는 두 여직원 중 연락이 되는 사람이 있으면 집으로 찾아가서 열쇠를 얻어 오는 것이다.

문제는 자정이 다된 시각이라는 점.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다른 방법이 없어서 업무적으로 소통하는 공유톡방에 노크를 남겼다.

"노크~!! 혹시 아직 잠들지 않은 분 있나요?" 이때 시각이 23:42분 이었다.

두 사람 중에서 다행히도 A직원에게서 즉각적으로 회신이 왔다.

"저 아직 잠자리에 들지 않았는데요."

좀 번거롭기는 해도 외박은 면하겠구나, 구세주를 만난 심정으로 그럼 전화를 걸겠다고 하고는 바로 연결했다.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미안하지만 집 앞으로 달려 갈테니 열쇠를 좀 내려 달라고 부탁을 했다.

 

그런데 잠시 후 당황하는듯한 목소리로 이런 답변이 돌아왔다.

"저 지금 열쇠가 없는데요..."

"아니, 왜요?"

"차 키에 함께 매달아 놨는데 차가 지금 정비공장에 들어가 있거든요."

이런~~~ 하필이면 A직원이 하루 전 출근길에 접촉사고를 당했다고 했는데 정비공장에 들어가 있었던 것이다.

또 한명 열쇠를 갖고 있는 B직원은 카톡을 안보고 있으니 이미 자정이 지난 시각에 전화를 할 수도, 집으로 찾아갈 수도 없다.

 

그렇다고 아무리 막역한 사이로 지내는 친구라 하더라도 자정 넘은 시각에 전화를 걸어서 하룻밤 재워달라고 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숙박시설로 가서 하룻밤 묵기도 내키지 않을뿐더러 가까운 곳에 있지도 않다.

에라~ 산에가서 비박도 하는데 차안에서 자면 되지 뭐, 좀 추울지 모르지만 여름날씨인데 얼어죽기야 하려구.

차에 드러누워 잠을 청하려니 사택 조명이 너무 밝았다.

할수없이 차를 몰고 어두컴컴한 곳으로 이동하여 잠을 청했다.

 

잠들기 전까지가 서글프지 잠들고 나면 그만인 법, 깜박 잠들었다 눈이 떠져서 시간을 보니 새벽 4시 조금 지났다.

다시 잠을 청하기도 뭣해서 새벽운동 삼아서 뒷산이나 한바퀴 돌고오자는 마음에 주섬주섬 챙겨서 산을 올랐다.

세시간을 돌고 내려왔는데도 출근시간까지는 1시간이 남았다.

가장 먼저 출근하는 그룹장 L차장도 비상키를 갖고 있을 것 같아서 출근하는 길에 사무실 문을 좀 열어달라고 전화를 했다.

전화연결이 서로 엇갈려서 숨바꼭질 하다가 겨우 연결이 됐는데 이런 된장, 가는날이 장날이라고 오늘 월차휴가를 냈단다. ㅠㅠ

 

이제는 한 사무실에 근무하는 여직원이 출근 할 때까지 기다릴 수 밖에 달리 방법이 없었다.

집도 사무실도 못들어가고 무료하게 시간 보내기가 마땅치 않아서 바로 이웃해 있는 문화회관에서 진행하는 노조교육이나 참관하려고 그리로 갔다.

그런데 왜 이렇지? 늘 북적거리던 문화회관 입구며 로비가 너무나 한산했다. 

이런~! 메르스 때문에 일주일 전부터 회사에서 주관하는 교육이 축소 또는 연장된데 이어 노조교육도 어제부터 잠정 중단된 상태임을 깜박 한 것이다.

여직원 A는 9시 출근이니까 한시간을 더 기다려야 했다.

그래 여태도 기다렸는데 한시간 더 기다리면 되지 뭐.

 

사무실 옆에 다목적실이나 독서실이 열렸으면 거기서 기다리자 싶어서 2층으로 올라갔다.

마침 독서실에 빈 컴퓨터가 있었다.

옳지 저기서 내 블로그에 미완의 상태로 사진만 올려놓은 꼭지 편집작업 하면서 A직원 출근 할 때까지 기다리면 되겠구나.

그런데 8시 반쯤 되었을까? A직원에게서 문자가 왔다.

몸이 안좋아서 병원에 가야겠기에 휴가를 쓰겠다는 내용이었다.

허걱~! 어떻게 이리 꼬일수가 있지? 몸 아프다는데 열쇠 갖다 달라고 할 수도 없고...

내 열쇠가 사무실 안에 들어 있는 상태에서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세 사람 모두가 열쇠를 갖고 있지 않거나 출근을 할 수 없는 상태라니!

에구~ 될대로 되라지, 자포자기 심정으로 9시도 지나버렸다.

끝내 사무실 문을 열지 못하면 월차처리를 하든가...

 

9시 20분경에 B여직원 한테서 전화가 왔다. 출근해서 사무실 문을 열었다는 내용이었다.

어? B여직원은 10시 출근인데다 열쇠는 정비공장에 가 있어서 기대를 안하고 있던 참이었다.

어떻게 빨리 문을 열었냐고 물었더니 내가 못들어가고 있는 상황이 애가 쓰여서 정비공장 들러서 열쇠를 가지고 출근을 서둘렀다고 했다.

고마운 마음과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그동안 작업한 내용을 저장하고 사무실로 가려는데 컴퓨터에서 저장대신 에러 메세지가 떴다.

이런~! 한시간동안 작업한 내용이 저장되지 않고 공중으로 날아가 버렸다.

근무시간에 사내망으로는 다음 블로그나 카페에 글쓰기가 안되는데 사택 독서실 컴퓨터는 안 그런줄로 생각한 것이 불찰이었다.

 

이렇게 하는 것마다 최악의 상황으로 이어지는 경우도 참 드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머피의 법칙'은 이런 경우를 일컫는 말일 것 같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