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산&산행기/산행후기(종합)

순금산 ~ 관문성 ~ 천마산 답사기

질고지놀이마당 2007. 5. 10. 16:59

◈ 선광사를 돌아 나오면 중산동 일대가 한 눈에 들어오는 천연 요새와 같은 전망대가 나온다.

관문성 유적 답사를 겸한 산행은 그동안 몇 번이나 벼르던 일인데 꼭 무슨 일이 생겨서 미뤄지곤 했었다.
지난달에도 가기로 한 날에 마침 46년만의 폭설이 내리는 바람에 제설작업을 하느라 못가고 말았다.

뭔가 오묘한 섭리가 작용해서 쉽게 접근을 허락하지 않았던 것인지, 관내 답사의 마지막 보루로 아껴두고 싶었던 속마음의 발로인지, 하여간 무룡산과 동대산 일대만 헤매고 다닌 것에 비교하면 관문성 답사는 매우 늦은 셈이다.

이번 탐방은 지난 휴무 토요일(2.12) 아침, 같은 아파트 뒷동에 사는 금효섭주사가 전화를 해서 갑작스럽게 이루어졌다.

전화를 받고 나니 특별히 준비할 것도 없지만 갑자기 바빠진다.
손 빠른 아내의 솜씨로 아침을 때우고, 간단한 간식만 준비하여 나섰는데도 9시 반이다.


정임석 열사는 4.19 민주혁명 당시 경무대 앞 시위대열에 참여하였다가 총탄에 맞아 순국한 당시 22세의 대학생이었다. 울산지역 유일한 4.19희생자인 정임석 열사의 뜻을 기리는 추모사업회(회장 권기술 전 국회의원) 에서는 매년 4월 19일 정 열사 묘지에서 추모제를 지내고 있다.

집안에서의 느낌으로 옷차림은 대충 준비하고 나왔더니 곧장 싸늘한 냉기가 느껴질 정도로 날씨가 쌀쌀하다.

약속시간이 지체된 탓에 다시 들어가 파카를 갖고 나오기도 뭣하고, 가까운 야산이라서 그냥 출발했는데 옷깃을 파고드는 냉기가 생각보다 매섭다.
일행은 길 안내를 맡은 문화공보과 하헌주담당과 금 주사, 우리 부부 4명으로 단출하다.

중산동 기적의 도서관 앞에 차를 대고 속심이 다리를 건너서 정임석 열사 묘비에서 산행 시작이다.

순금산 자락에 자리한 정 열사 묘지 옆으로 난 오솔길을 따라 오르자 낭랑하게 울려 퍼지는 산사의 독경소리가 길손의 마음을 이끌리게 한다.
깎아지른 절벽이 자연적인 것이라면 선광사(仙光寺) 절터는 가히 명당이지 싶다.

절벽을 병풍삼아 크지 않은 대웅전이 자연과 조화를 이루고 있는데 북사면인 탓에 아직도 군데군데 잔설이 남아있다.

행여 수행에 방해가 될까봐 사진 한 컷을 찍은 후 가장자리에 자리한 요사채를 돌아 나서자 굴뚝 위로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연기가 더없이 평온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선광사 대웅전

절집을 돌아 나와 몇 걸음 되지 않는 곳에 중산동 일대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천연 요새와 같은 전망대가 나타난다.
자연 암벽 위에 평평한 공간이 꽤 넓게 형성되어 있어서 체육시설까지 갖추어 놓았다.

완만한 나선형 경사길을 좌측으로 돌 듯 따라 오르면 군데군데 묘지가 나타나고 산불이 난지 꽤 오래됐음직한 상처들이 아직도 아물지 않고 군데군데 남아있다.

발아래 펼쳐진 중산동 일대는 물론, 농소지역 전체와 송정동, 효문동 그리고 멀리 무룡산까지 북구 일대를 조망하기에는 더없이 좋은 등산로다.



첫 번째와 두 번째 봉우리는 평범할 뿐이어서 그냥 지나치고, 성곽의 흔적이 뚜렷하게 나타나는 세 번째 봉우리가 순금산(舜琴山 293m), 일명 관문산(關門山)이다.

성곽이라고는 하지만 1,300년이란 세월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허물어져서 무너진 돌담의 형태로 남아있어 보는 이의 마음을 안타깝게 한다.

작년 여름 무룡산~토함산 산행 당시 기박산성에서도 느꼈듯이 성곽 쌓기 부역에 동원되었을 민초들의 고초를 생각하면 돌멩이 하나도 예사롭지 않다.

이 많은 돌은 어디에서 조달하여 어떻게 날랐을 것이며, 아무런 장비도 없이 오로지 노동력 하나로 하나하나 이루었을 것 아닌가!


관문성은 국가사적 48호로서 북구 중산동 동대산에서부터 울주군 두동면 월평리(치술령 망부석)까지 12km에 달하는 신라의 장성(長城)이다.
왜구들의 침입을 막기 위해 신라 성덕왕 21년(722)에 쌓은 것으로 전해진다.


중국 만리장성에 비할 수는 없지만 중국의 장성은 훌륭하게 보존 복원되어 세계적인 관광명소가 되고 있는 것을 생각하면 무너진 돌무더기가 마치 국력과 역사인식을 나타내는 것 같아서 부끄럽기 그지없다.

무너져 내린 돌무더기 상태로 방치한다는 것은 선조들에 대한 도리가 아니라는 생각이다.
우리 북구의 살림이 곤궁하지 않다면 어떻게든 성곽을 복원하련만...

순금산에서 바라보는 치술령은 골프장 건설로 인해 군데군데 산자락이 잘려나가고 살점이 찢겨져 신음하고 있다.
이곳에 골프장이 건설되면 그 과실은 전부 경북 경주시에서 가져가고, 환경훼손 및 오염으로 인한 피해는 동천강 수계를 따라 고스란히 울산 북구로 내려오게 된다.

이 문제를 지역사회에 고발하려고 ‘현자노동자신문’에 특집 기사를 쓰느라 숨바꼭질하듯 현장취재를 다녔던 기억이 새롭다.
그 때가 95년경이니까 벌써 10년이나 되었는데 중간에 부도가 났는지 아직도 완공이 안 되고 파헤쳐진 몰골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

치술령 아래 평화롭던 석계마을 역시 골프장 건설에 대한 찬반 갈등으로 마을의 평화조차 깨져버렸으니 안타까운 일이다.
개발이라는 이름 하에 저질러지는 무분별한 파괴로 인한 후과다.



여기서 잠시 쉬면서 내려다보는 남쪽 조망은 야트막한 야산이 점점이 떠있는 섬과 같아서 마치 다도해를 연상케 한다.
가장 멀리에 희뿌연 연기를 토해내는 울산공단이 있고, 그 중간에 함월산을 깎아서 조성한 성안지구가 신음하듯 자리하고 있다.

성안지구는 어디에서 바라봐도 눈에 거슬리지 않는 곳이 없어서 두고두고 잘못된 개발의 상징으로 남을 것이다.
함월산 개발(?)을 추진했던 당대의 실력자들의 이름도 공개하여 길이 남길 일이다.

서남쪽으로 올망졸망한 봉우리를 연결하는 능선 길을 따라 걸으면 천곡(泉谷)을 끼고 원형으로 빙 돌게 되는데 안쪽은 울산 북구고, 바깥은 경북 경주(석계)다.

이 구간은 주위 전망이 한눈에 내려 보이기 때문에 길 잃을 염려는 없을 듯 하다.
걷다가 언제든 원형의 안쪽 내리막길로 내려가면 천곡 마을로 연결되기 때문이다.

순금산을 비켜 돌아 내려가는 곳에 성곽의 형태가 가장 뚜렷한 구간이 나타난다.
북구청에서 봄과 가을에 산림녹지단을 투입하여 풀베기 작업을 한 탓이다.
한동안 성곽과 나란히 이어지는 산길을 따라 걷다가 제법 높은 봉우리가 천마산(天馬山, 303m)인데 고맙게도 주민들이 정성을 모아 대리석으로 만든 작은 표지석을 박아 놓았다.



이곳에서 서쪽 치술령으로 연결되는 관문성 성곽과 갈라서게 되는데 동남향으로 난 등산로에는 쌍용아진 아파트 방향을 가리키는 표지판이 서있다.

이제 좌우측 모두가 북구 관내다.
좌측은 여전히 천곡이고, 우측은 달천동이며, 멀리 가대를 거쳐 성안동으로 넘어가는 작은 길이 보인다.
천곡에서 달천으로 이어지는 임도가 개설된 지 얼마 안 되는지 아직 절개지가 맨살을 드러내고 있다.

임도를 가로질러 야트막한 능선길로 오르면 특이한 바위 형태가 눈길을 끈다.
바위에 작은 돌맹이들이 점점이 박혀있는 것이 퇴적암이 아닌가 싶은데 그렇다면 바다가 융기해서 산이 되었다는 것인지 짧은 지식으로는 궁금증만 더할 뿐이다.

제법 멀게 건너다 뵈는 순금산 자락에는 임도를 따라 조성된 묘지가 얼마나 많은지 마치 과일나무를 ?여 놓은 것처럼 보인다.
산불진화와 효과적인 산림관리를 위한 임도가 거꾸로 자연훼손과 호화분묘 조성에 일조하는  역기능도 있음이다.



이제 길손은 하산지점을 어디로 할 것인가를 생각해야 한다.
오른쪽 발아래는 달천 농공단지를 꽉 채운 공장지붕이 파란 바다처럼 펼쳐진다.
왼쪽으로 길을 잡으면 아직 천곡동으로 내려가게 되고, 좀 더 지나면 한마음 선원, 다음은 대동 한마음 아파트 쪽, 내처 걸으면 쌍용아진 아파트까지 이어진다.

반대방향, 즉 천곡의 반대편은 달천 농공단지로 내려가는 길이다.
도중에 방향과 거리를 알려주는 이정표가 군데군데 세워져 있다.
대동 한마음 타운 뒷산을 지나 달천 철장터를 지나서 하산하기까지 등산이라기보다는 산보라고 해야 어울릴만한 길이지만 사진도 찍고 유심히 살펴보면서 걷다보니 약 4시간 정도가 걸렸다.

그렇다 보니 글 제목으로 산행기, 답사기, 탐방기 중 어느 것이 어울릴지 고민스럽다.

순금산~관문성~천마산을 돌아 쌍용아진 아파트로 내려오는 코스는 높이가 200~300m 정도의 올망졸망한 산들이 완만한 경사로 이어져 있으며, 등산코스도 다양하여 천곡에서 오르면 1시간 내외, 길게 잡아도 4시간 정도여서 초심자는 물론, 주말이나 휴일에 아이들 데리고 가족단위로 걷기에 알맞은 탐방코스라 하겠다.

이처럼 우리 북구는 돌아볼수록 자연과 인간이 조화를 이루며 공존할 수 있는 조건을 가진 축복받은 땅이자 무한한 발전 가능성을 지닌 희망의 땅임이 실감난다.


 

<추신> 이 글은 2005년 2월 개인홈페이지에 올린 탐방기를 옮겨왔습니다.